팔레스타인 감독 라에드 안도니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기획한다. 첫째, 이스라엘에 의해 기약 없이 강제 감금됐던 경험이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둘째, 감독은 그들과 함께 하나의 거대한 팔레스타인인 구금 센터 공간을 물리적으로 구현해 낸다. 셋째, 이스라엘에 의해 폭력적으로 자행된 심문 경험들을 공유한 뒤 그들은 참혹했던 기억들을 무대 위에 직접 재연한다. 한 명이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좁디좁은 감방에 갇혀 비인간적인 심문 과정에 맞닥뜨려야만 했던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철저하리만치 무력하고 수동적인 위치에 강제로 내몰렸던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벌레의 시간으로 기꺼이 되돌아간다. 지옥의 심연에서 그들이 안간힘으로 건져내는 것은 각자의 고유함이다. 절대적으로 무력했던 상황에서조차 어느 누구도 끝내 함부로 빼앗거나 파괴시킬 수 없었던 각자의 내밀한 시공간. 그렇게 그들은 자신이 고깃덩어리로 추락했던 시간 속에서 기어이 인간의 순간을 구제하고 증명해 낸다.